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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 사는 걸 엔조이 해요

글쓴이: 클라라안  |  등록일: 05.31.2013 10:34:28  |  조회수: 4673
병마에 시달리는 할머니께서 들려준 말씀이다. 
이 분은 자식도 없고 남편과도 사별하고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가시는 분이시다. 최근엔 걷는 것도 힘드셔서 워커에 의지하시면서 당연히 운전조차 할 수 없어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이용하신다. 이 분과의 인연은 몇 년 전 메디케어 보험 신청으로 시작되었다.
 
내게는 고객이라기 보다는 어머니같은 포근한 느낌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인지 나도 그 분과의 데이트가 즐겁다. ”우리 선배가 그러는데 xx 삼계탕 집이 그렇게 맛있게 잘한대. 우리 다음엔 거기가서 영양 보충하자.”  다음에 만나면 어느 음식점엘 가서 무슨 메뉴를 고를까를 고심해보곤 한다. 
 
몇 주 전 그 할머니와의 만남은 LA 한인타운 순두부 집이었다. 오랫만에 매콤한 순두부를 호호 불어가며 먹으며 그 동안 함구하던 그 분의 옛날 얘기들을 조금 들려주셨다. E대 시절 젊은 총각 교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셨던 일들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몸이 약해 그만둔 일을 재미있게 떠올리며 혼자 껄껄 웃으시다가 때론 아쉬워하는 모습으로 들려주셨다. 
 
그 이후 어떤 분과 결혼하여 미국까지 오셨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남편이 돌아가신 후 힘드셨겠다는 말에 그분의 대답이 의외였다. "내가 바람끼가 있거든.." "네???? 바람끼요?" "응, 그래서 이 나라 저 나라 혼자서 돌아다녔어. 관광팀에 끼여 다녔는데 이 순두부집 사장도 그 때 한팀이었나봐. 얼마 전에 날 알아보고 반가워 하는데 난 생각이 안 나서 미안했어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들을 혼자서 바람처럼 떠돌아 다니며 가슴에 응어리들을 풀어 날려보낸 후 이렇게 강해진걸까? 알고보니 우리 어머니와 동갑이시라서 그런지 난 그 분이 살아온 인생이 더 흥미로웠다. 순두부 집을 나온 후 우린 마켓에 들러 과자를 사기로 했다. 옛날 한국에서 먹던 과자들을 발견하면 우린  반색을 하며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곤 옆집에 있는 빵집에서 아이스 케키를 사먹으며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분의 일상이 궁금해서 여쭤봤다. 늘 한주먹의 처방약을 드시고 심장 수술까지 하신 분이시고  아무도 돌보아 주는 분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할까 싶었는데 또 의외의 말씀을 해 주셨다.  “난 하루하루의 삶을 엔조이해요!” 엔조이?? 어떻게, 무엇을 엔조이 할 수 있을까? 
 
내가 객관적으로 본 그 분의 삶은 안타깝고 슬프고 외로운 삶인데 삶이 재미있다니.. 가끔씩 남동생이 찾아오는 것 말고는 아파트에서 이분에게 기쁨을 주는 일은 무엇일까?.. 운전을 하며 집에 오면서 이분과의 데이트를 생각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야 마음!! 매콤한 순두부를 먹을 수 있는 것, 소시적 먹던 과자 이름을 보며 아득한 옛날을 떠올릴 수 있는 것, 아이스케키를 입에 묻혀가며 낄낄 댈 수 웃을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오늘 하루 충분히 행복했노라...
잔잔히 웃으시는 그 분의 모습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되어 오늘도 내게 힘을 준다. 그리고 오늘 바로 이 순간의 삶을 엔조이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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