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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역사 – Cabrillo 이야기 (2)

글쓴이: Artchocolate  |  등록일: 06.08.2015 11:26:21  |  조회수: 5477
그 후, 지금의 샌디에고 지역을 출발하여 해안선을 따라 지도를 작성하며 북상하던 탐험선들이 도착한 곳은 오늘날의 산타카탈리나 섬과 산페드로 인근 해역이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Santa Catalina[산타 카탈리나], San clamento[산클라멘토] 섬 인근을 돌아보며 섬의 지형을 살피던 중 보급함 산 미겔 호가 향유고래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것도 10미터도 넘어 보이는 커다란 향유고래였다.

 

몸통의 반이 머리인 향유고래의 커다란 머리통에는 기름이 잔뜩 들어있는데 당시 유럽인들은 그것을 ‘바다의 보물’이라고 불렀다. 한 마리의 향유고래가 가지고 있는 다섯 드럼통에 해당되는 향유는 상처를 치료해주는 연고나 여성용 화장품, 최고급 향수를 만들어 내는 값비싼 향료여서 캘리포니아 탐험대가 이 같은 호기를 놓칠 리가 없었다.

 

고래잡이 경험이 많은 전투함 빅토리아 의 ‘마르틴’ 선장이 직접 진두지휘를 했다.

 

우선 날카로운 커다란 작살을 녀석의 심장을 향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내리 찍었다. 그러다가 녀석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자 정조준하고 대기하던 전투함의 포수들이 포격을 가했다. 두 발의 캐넌 포탄이 녀석의 몸뚱이에 명중하자 녀석은 죽은 듯이 잠잠해졌다.

 

배의 갑판에서 길게 내려온 여러 개의 밧줄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커다란 갈고리들이 고래의 몸통 여기저기에 박힌 채 녀석은 배의 옆구리에 단단히 묶여졌다. 커다란 머리는 마치 바위 같았는데 껌벅거리는 두 눈만이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로 고통스러워하는 향유고래를 선원들이 합심하여 위 아래에서 날카로운 칼로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향유 고래의 지방질을 기다랗게 잘라 커다란 고리에 끼운 다음 갑판으로 끌어올려 기름을 짜는 단지에 쏟아 붓는가 하면 날카로운 칼로 살코기를 잘라내어 갑판으로 올려 주방으로 보냈다.



마침내, 그들은 껌벅거리던 향유고래의 두 눈을 영원히 감기고 말았다.



향유고래의 죽음을 확인한 마르틴 선장은 고래 머리의 상단으로 올라가 커다란 구멍을 낸 후, 양동이로 ‘바다의 보물’인 향유를 퍼내는 시범을 보였다. 그러던 마르틴 선장이 그만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고래의 뇌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구조를 시도했지만 소용 없이 시간만 허비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여러 선원이 고래 머리의 하단에 커다란 구멍을 내자 향유가 아래로 쏟아지면서 마르틴 선장도 함께 바다로 떨어졌으나 끝내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마르틴 선장은 캘리포니아 탐험의 첫 번째 사망자로 처리되었다.

 

먼 발치 카탈리나 섬 언덕에서 수 많은 눈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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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배 옆구리에 매단 채 카브리요 일행은 카탈리나 섬의 주변을 탐사한 후 남동부 해안에 닻을 내렸다. 그들이 닻을 내린 섬의 해안은 바람이 잔잔했고 해안가에는 ‘전복(Avalon)이 유난히도 많이 눈에 띄는 지역이었다.

 

카브리요는 그의 일지에 산타 카탈리나]섬의 탐사를 비롯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남겼다.

 

- 1542년, 10 월 5일 -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던 우리는 섬들을 발견하여 탐사를 시작했다.

 

피무(Pimu)족이라고 칭하는 인디언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섬에서 살고 있었다는데 이들은 주로 카누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였다.

카누는 1인용, 2인용이 대부분이었는데 게 중에는 5~ 6 명이 탈 만한 큰 카누도 눈에 띄었다.

 

호기심이 많은 일부 인디언들은 신기한 듯 탐험 선에 가까이 접근하여 배를 만져 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배 옆구리에 매단 커다란 고래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치고 말았다. 경계심을 보이는 인디언들의 몸에는 조개 껍질과 전복의 껍질로 치장이 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황금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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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브리요는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Santa Catalina[산타 카탈리나] 섬의 이름을 그의 주력함의 이름을 따서 ‘산살바도르’라고 명하였고 San clamento [산클라멘토]섬의 명칭도 전투함 빅토리아 호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라고 지었다.

 

다음날 탐험 선은 동쪽을 향해 해안가 접근을 시도했는데 언덕에서 인디언들이 불을 피우고 연기를 날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카브리요는 그 항만을Bahia de humo (연기 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곳이 오늘날의 샌페드로 항구이다.)    <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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